교통신호를 위반했다가 다쳐 치료를 받고 건강보험 급여를 받은 것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민건강보험법이 보험급여 제한 사유로 정한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2월 4일 환자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환수 고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부당이득금 환수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원심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정지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해 교차로에 진입했으나 신호에 따라 좌회전하던 피해 차량을 들이받아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각 호의 사유가 국민건강보험법이 보험급여 제한 사유로 정한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는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 제4조 제1항 단서 제1호는 운전자가 교통신호나 지시를 위반해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 등을 범한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자동차 종합보험 등에 가입된 경우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은 "A씨는 교통신호를 위반한 채 교차로에 진입한 과실로 발생한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어 치료(요양급여)를 받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씨의 부상이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A씨에게 요양급여비용 상당액에 관해 부당이득징수 처분을 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관계 규정의 입법 취지는 국민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를 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의 입법 취지와 다르다"며 원심법원과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그 사고가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국민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고가 발생한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교통사고 방지 노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는 교통신호를 위반한 과실은 있지만, 사고 경위 등에 비춰 A씨가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 착오로 교통신호를 위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A씨의 부상이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기사입력 : 2021.02.19 06:00